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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이코노미스트-2008.12.30-쇠를 가구로 만드는 '철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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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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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30 이코노미스트]





김영숙 선일금고 사장의 '금고 인생'

쇠를 가구로 만드는 '철의 여인'
남편 타계 후 회사 직접 경영...요즘 금융회사 신뢰 떨어지자 더 잘 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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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김치냉장고가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 누구도 이 제품이 '히트'를 칠 거라 생각지 않았다. 몇 년 전 음식물 처리기가 선보였을 때도 '누가 사겠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두 제품 모두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금고는 어떨까? 주로 청진기와 함께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금고는 직접 사용하는 물건으로는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선일금고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보란 듯이 신개념 금고를 시장에 내놓았다. 여기서 말하는 금고는 '새마을금고'같은 금융기관이 아니라 가정이나 회사에서 귀중품을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신제품 '루셀'은 일단 외관상 전혀 '금고스럽지' 않다. 세련된 스트라이프와 화려한 꽃문양에 와인 색상을 입혀 고급스럽고, 모서리는 둥글게 처리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73년 창립 이래 자신있게 선보이는 '야심작'이라 할 만하다. 그동안 일궈온 기술력에 외부 전문 디자인 업체의 디자인을 더했다. 여기에 금고로는 최초로 이름표(브랜드)를 달았고 마케팅이라는 전에 없던 포장단계를 거쳤다.
 2년 동안 공을 들인 과정에서 투자한 돈이 30억원이다. 중소기업엔 적은 돈이 아니다. 투자금의 30%를 자체 조달하고 나머지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지원 받았다. 김영숙(53) 선일금고 사장은 "금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금고는 화재나 도둑으로부터 돈을 보호하는 역할만을 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금고는 돈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두는 곳입니다. 외국에서는 부자가 아니더라도 개인 금고를 하나씩 갖고 있어요. 루셀은 금고가 추억을 간직하는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할 겁니다."

추억을 간직하는 생활필수품
 이렇게 얘기하는 김 사장은 과연 금고에 무엇을 보관하고 있을까? 고등학생 때 딴 부기 합격증, 약혼반지, 둘째 딸의 배냇저고리가 들어 있다고 했다.
 김 사장이 금고에 이렇게 깊은 철학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선일금고는 35년동안 외길을 걸어왔다. 세계 1등 중소기업 목록에 '내화금고'로 이름을 올리는 기업이기도 하다. 2004년 낙산사 화재 때 동종을 녹인 불길에도 선일금고 제품만 멀쩡했다는 일화는 업계에서 유명하다. 또 내화금고, 외문형 금고, 다이얼 금고, 지문인식 금고, 디지털 금고, 경보기 부착 금고 등 국내 최초로 도입한 '작품'이 많다.
 김 사장의 '금고 인생'은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사장은 원래 세무서에서 근무했다. 당시 선일금고의 수출 문제로 오전에는 선일금고, 오후에는 세무서를 오가는 생활을 하다 76년에 아예 선일금고로 자리를 옮겼다. 경리 사무부터 자재 관리까지 회사 운영에 필요한 관리 업무는 모두 김 사장의 몫이었다. 제품 개발과 기술은 남편인 고(故) 김용호 선일금고 회장이 담당했다.
 선일금고를 설립한 김용호 회장은 '금고의 명장'이라 불린다. 한국전쟁 때 고아가 된 그는 군대를 제대한 뒤 집 근처 금고 제조회사에 취직했다. 아직 국내에 금고 만드는 기술이 도입되지 않은 때라 그곳에서 하는 일은 주로 중고 금고 수리였다. 1년 정도 근무하고 나서 정식으로 금고 기술을 배우고자 미국의 디볼드사에 취직한 그는 미국, 일본, 독일, 이스라엘 등 세계를 누비며 기술을 배웠다. 독일 람퍼스에서는 일주일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정문 앞에서 버틴 결과 30분 동안 공장 안을 봐도 좋다는 허락을 얻었다. 일본의 금고회사에서는 화장실 철창을 뜯고 공장 안에 숨어들어 가기도 했다. 베트남전쟁 때는 16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기술자로 선발돼 고장난 금고를 열고 군사기밀 서류를 꺼내는 등 그야말로 금고 전문가로 활약했다.
 그는 73년 국내에서 직접 세계 최고의 금고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2004년 이맘때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어요."
 김 사장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남편을 잃고 나서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회사를 끌고 가느냐, 버리느냐.'
 그가 남편의 빈자리에 앉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남편이 평생을 바친 일'이었기 때문이다. "회장님은 금고에 혼이 나갔다고 할 정도로 인생을 다 걸었어요. 포기하면 안 된다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선일금고는...
1973년 고 김용호 회장이 설립했다. 96년에 지금 본사가 있는 경기 파주시 월롱면에 자리 잡았으며 직원은 140명이다. 76년 첫 호주 수출을 시작으로 미국, 중동, 유럽, 동남아까지 판로를 넓혀 현재 80여 개국에 금고를 수출한다. 지난해 매출은 130억원 정도고 수출 비중이 80%를 차지한다. 개인고객은 20%에 못 미치는데 점점 늘릴 계획이다.

 
두 딸도 아버지 뜻 따라 경영 참여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고가 난 지 일주일 만에 직원 전원이 정상 복귀했고, 달이 바뀌자마자 김 사장은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다. 오랫동안 관리 총괄을 맡았기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외부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여자라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반대로 여자가 철 만드는 일을 한다니 대단하다는 말도 들어요. 남성, 여성이 함께 회사를 경영하면 상호 보완이 잘 이뤄집니다. 요즘도 힘들다는 남성 CEO에게 '부인을 회사로 불러내라'고 조언해요"(웃음)
 김 사장의 이런 '상호 보완' 철학은 선일금고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선일금고는 기술, 제작과 관리를 철저히 분리해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신경 쓰느라 맡은 일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4년 전까지 부부가 나뉘 맡았던 일을 이제는 두 딸이 한다. 제어계측과를 졸업한 첫째 딸 김은영(31) 상무는 공장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둘째 딸 김태은(29) 차장은 사무실에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각자 분야를 책임지고 있다.
 김 차장은 대기업에서 3년 정도 근무하며 선진 시스템을 배운 뒤 오고 싶었지만 '현장에서 배우라'는 아버지 말씀에 2001년부터 근무했다. 청소, 잡일부터 시작해 현재 관리총괄을 담당하는 그는 70년대에 장부 정리를 못해서 국세청으로부터 1200만원 벌금을 문 것과 같은 일이 다시는 안 일어나도록 체계화된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게 '우선 목표'란다. 김 사장의 생각도 같다.
 "유지할 것은 유지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그분(김용호 회장)이 못한 일은 끝내고 물러나야지요. 제일 급한 것이 '시스템화'입니다. 경영주가 없어도 공장과 사무실이 잘 돌아가도록 '유사시'를 준비해야 해요. 저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요. 다음 할 일이 해외 시장에서 정착하는 것입니다."
 선일금고는 미국에 수출하는 금고의 70%를 차지한다. 2006년에는 중국 숙천시에 공장을 지었다. 매출액은 160억원이다. 최근 금융 위기로 금융회사들의 신뢰성이 하락하면서 전년 대비 주문량은 오히려 10%가량 올랐다고 한다.
 "86년까지만 해도 금고시장이 거의 형성되지 않았어요. 기업이 하나 둘 생기고 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한 후에야 해외 판로가 열렸지요. 80년대에 없던 금고시장이 600억원대 규모로 커진 것처럼 인테리어 가구로서 금고시장도 새롭게 개척할 자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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